월간 에세이 기고 <내가 쓰는 이유>

내가 쓰는 이유
강원국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나이 쉰 살까지 읽으며 살았다. 학교에서는 교과서, 참고서를 읽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상사의 마음을 읽었다. 읽기만 잘해도 됐다. 잘 읽으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사람이 출세한다. 과연 이런 대접이 온당한가. 쉰이 넘어 알았다. 사람은 쓰고 살아야 한다.

내가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신영복 선생님이 그랬다. 읽기, 듣기로는 정체성이 생기지 않는다. 말하고 쓸 때 자아가 형성된다. 내 말과 글이 나다. 그렇다. 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의 대상이다. 주인이 아닌 객이다. 쓰는 사람이 주체다. 읽기만 하는 삶에 나는 없다. 읽기는 쓰기 위함이다. 내가 남의 글에 설득당하고 감동받기 위해 이 세상에 왔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나는 존중받고 싶다. 직장생활 내내 나는 없는 사람이었다. 회장이나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지만 그것은 쓰기가 아니었다. 생각을 읽고, 읽은 것을 글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스피치라이터는 고스트라이터, 유령 작가다. 눈치를 잘 보는 사람, 눈치 빠른 자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글의 주인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친다. 완성된 글도 내 것이 아니다. 고치는 과정에서 자아효능감이 떨어진다. 역시 나는 안 돼. 홀대하고 비하한다. 나를 어여삐 여기지 못한다. 나뿐 아니다. 대다수 직장인 그렇다. 그러면서 산다.

나는 표현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과 감정이 있다. 표현욕구와 인정욕구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인정받고자 한다. 읽기로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주머니 속 송곳은 감추는 게 안전하다. 잘난 체 하는 사람으로 왕따 되기 십상이다. 사회가 그럴수록 생각을 표현해 우쭐함을 느껴야 한다. 감정을 표출해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 누가 나를 알아주고 위로해 주겠는가. 나 잘난 맛에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는 그러려고 세상에 왔다.

나는 성장하고 싶다. 강의를 해보면 안다.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힘든 게 없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또 해야 하는 경우 토할 것 같다. 새로움과 콘텐츠의 확장이 없다. 정체된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내가 같고, 또 같은 나를 내일 만나야 한다. 기대와 설렘이 있을 수 없다. 쓰지 않는 삶이다. 쓰는 만큼 성장한다. 쓰는 분량만큼 내 안의 내가 큰다. 허접한 이전 글을 보면서 나의 성장을 확인하다. 2~3년 전 내가 쓴 글을 보면 딱 중학교 수준이다. 그새 상전벽해를 이뤘다. 앞으로 2~3년 후 나는 또 얼마나 변해 있을 것인가. 가슴이 뛴다. 하루하루가 심드렁하고, 사는 게 재미없는가. 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쓰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함께하고 싶다. 읽기는 소비요 소유다. 이미 있는 것,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쓰기는 생산이요 공유다. 내가 만든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행위다. 남을 위한 마음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자네는 청와대 경험을 책을 써서 공유하게. 그렇지 않으면 특권을 누린 걸세.” 읽기는 경쟁이고, 쓰기는 협력이다. 학교 다니는 내내 읽기 경쟁을 했다. 내가 안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쓰기는 없다. 경쟁은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베풀고 협력하며 관계할 때 인간은 행복하다.

쓰자, 매일 쓰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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