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기고문 “진정한 인문인”

수협중앙회 소식지에 기고했다.

진정한 인문인

인문학 열기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내가 나로서 나답게 살고 싶다는 것일 터.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내 글을 쓰고 내 말을 하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과 글이 나일 테니까.

내게 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은 첫 번째가 감사함이다. 요즘 나는 말하기 위해 글을 쓴다. 아니 쓰기 위해 말한다. 말하려면 써야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를 글쓰기 강의하는 사람으로 안다.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강의는 수단이다. 먹고사는 방편이고 글을 쓰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에 감사하다. 개방형 화장실, 고속철도, 스마트폰. 이것이 없었다면 강의하는 생활은 꿈도 못 꿨다. 개방형 화장실과 고속철도 덕분에 나 같은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도 전국을 누비며 강의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언제 어디서나 강의 요청을 받고 생각나는 것을 메모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가지가 있어 책 쓰기도 가능했다. 노트북과 인터넷이다. 머릿속 지식과 생각만으로, 그것도 원고지에 쓰던 시절이었다면 책을 쓴다는 것은 꿈도 못 꿨다. 아무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두 번째는 내게 글 쓸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나의 최고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작가 세르반테스가 그의 유일한 대표작 ‘돈키호테’를 완성한 나이는 68세였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 괴테는 82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다. 조선시대 최고 문필가 연암이 ‘열하일기’를 쓴 것도 당시로선 인생 말년에 해당하는 마흔 중반이었다. 또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일찍 세상을 떠났는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고 하던 푸시킨은 37년간의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다. ‘변신’을 쓴 독일 문호 카프카도 마흔에 요절했다. 천재 시인 이상은 스물일곱에 삶을 접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기형도는 스물아홉 해 짧은 생을 마쳤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내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시간이 있는 한 못 쓸 글이 없다. 언젠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셋째 지금 글을 쓰는 데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는 게 오히려 내게 용기를 준다. 긴장하면 글을 잘 쓸 수 없다. 말하기도 그렇고 시험 보는 것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자. 긴장할 이유가 없다. 글쓰기 전에 이미 글의 수준은 결정돼 있다. 자기 수준만큼 나오는 게 글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쓰기 직전까지 쌓인 실력 이상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이미 정해진 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글쓰기는 시시때때로 다르다. 어떤 때는 잘 써지고 또 어느 때는 안 써지기도 한다. 늘 같지 않다. 글 쓰는 날의 운과 컨디션에 달렸다. 그러니 안달복달할 이유가 없다. 역사에 남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독자들 넋을 빼놓는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잖나.

넷째 생각이 아니라 경험을 써도 된다는 사실이 내게 한없는 용기를 준다. 글에는 두 영역이 있다. 하나는 생각의 영역이다. 개념, 관념에 관한 것이다. 이성과 당위의 세계다. 머리를 굴려야 한다. 지식, 논리, 추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는 사람마다 역량 차이가 있다. 불평등하다. 다른 하나는 경험의 영역이다. 사실에 관한 것이다. 감성과 느낌의 세계다. 눈, 귀, 코, 입, 손, 발을 부지런히 굴리면 된다. 느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안 읽은 사람이나 똑같다. 오히려 책상물림보다는 경험으로 체득한 느낌이 더 풍부하고 생생하다.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보다 주변 사람에 관심을 갖고 살아온 사람에게서 더 잘 발달한다. 생각은 고급과 저급이 있지만 경험은 서열이 없고 높낮이가 없다. 위아래의 높이가 아니고 옆의 넓이가 중요하다. 인문학은 사람을 위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을 포함한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하늘과 바다와 땅의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것이라고 했다. 바다를 가꾸고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수협인 이야말로 인문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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