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투데이 기고 12회

SNS 글쓰기

나는 세 번 미쳐봤다. 대학입시 볼 때 4개월간, 청와대에서 8년간, <대통령의 글쓰기> 쓸 때 두 달 간 완전히 미쳤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남의 말을 들을 때도 그것만 생각했다. 그리고 또 미쳤던 때가 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빠졌을 때다. 아내가 적당히 하라고 성화였다. 한 번은 블로그 댓글 달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 자빠진 데서 일어난다는 생각으로 종합병원 야간 응급실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블로그 보다 자빠졌으니 블로그 쓰는 걸로 일어선다는 오기로 썼다. 이 정도면 중독이다. 그러나 글쓰기에는 유익했다. 무엇보다 즐거웠다. 온라인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나는 나를 알리겠다는 목적을 갖고 쓴다. 나의 타깃은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글쓰기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적으로 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좀 더 거창한 목적을 표방하기도 한다. 개방, 공유, 참여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MIT 학생 리차드 스톨만이 불을 당긴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 관해 알게 됐다. 글을 쓰고 읽는 참여, 누구나 읽고 퍼갈 수 있게 하는 개방, 콘텐츠의 공유가 온라인에서 실현되고 있다. 만약 글쓰기와 관련한 자기만의 방법을 공개하고 공유한다면 글쓰기 노하우 빅데이터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글쓰기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여기에 동참하는 것을 온라인 글쓰기의 명분, 즉 목적으로 내세운다. 다만, 이런 믿음은 있다. 나눌수록 커지고, 나누어야 행복하다. 많은 사람과 나눌 때 꿈도 이루어진다.

둘째, 목표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가능한 계량화해서 잡는다. 페이스북의 경우 좋아요 100개, 블로그는 일 방문자 500명 이런 식이다. 목표가 있으면 매일 쓰게 된다. 군대 있을 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 “눈 온다고 전쟁 안하냐?” “비 온다고 쳐들어오지 않냐?” 이런 말을 들을 때 절망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익하기도 했다. 체념하게 했기 때문이다. 훈련을 건너뛰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게 했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글 쓸 때 이 생각을 했다. 나태함을 다잡았다. 하루 세 번 블로그에 글을 썼다. 삼시세끼다. 안 먹으면 배가 고프듯, 안 쓰면 허기졌다. 몸에 영양소를 공급하듯, 정신에도 밥을 줬다. 정신의 밥은 글이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칼럼 한편이라도 읽었다. 수시로 메모했다. 늘 블로그에 쓸거리를 생각했다. 나는 매일 다독 다작 다상량 했다. 매일 쓰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더 많은 글을 올리고자 하는 의욕이 샘솟는다. 그리고 쌓인 글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게 된다. 쓰면 쓰고 싶어지고, 쓰면 쓸수록 쓸 거리가 늘어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써놓은 글끼리 서로 관계를 맺고, 나도 알지 못하는 새롭고 기발한 글들을 쏟아낼지 모른다. 나는 그런 기대를 한다.

셋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내 캐릭터는 웃긴 사람이다. 웃음이 나오는 글을 쓰기 위해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소재를 찾았다. 비틀기(의외성), 돌려치기(반전), 바보 되기(가학)다. 마지막 웃기는 한 줄을 먼저 썼다. 이 한 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앞에 자락을 깔고 공을 들인다. 소설 작법을 주로 활용했다.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먼저 배경으로 자락을 깐다.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그려줌으로써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상황과 환경을 떠올리고, 그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한다.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은 일상적이지 않을수록 좋다. 핵심은 인물이다. 사건 안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거나 웃음 또는 감동을 준다. 이때 인물의 캐릭터가 관건이다. 독자가 인물의 성격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욕심이 많거나 도전적이거나 성실하거나 기발하거나 착하거나. 나는 허당으로 정했다.

넷째, 일관성이다.

캐릭터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지금은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리지 않지만 한때는 매일 포스팅했다. ‘좋아요’가 늘 300개 이상 됐으니 꽤 인기가 있던 셈이다. 비결은 일관성이다. 가장 중요한 일관성은 꾸준히 올리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소재의 일관성이다. 한 가지 소재를 갖고 지속적으로 썼다. 소재는 아내에게 혼난 이야기. 블로그 할 때에는 ‘글쓰기’에 관해 썼다. 자기만의 테마가 있어야 한다.

한 가지를 깊게 파면 재미있다. 파면 팔수록 그 분야를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잘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자산이 된다. 그 분야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거나 자기 책을 쓸 수도 있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크다. 사람도 얻게 된다. 온라인에서 친구와 이웃이 생긴다. 나아가 오프라인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언젠가 나의 우군 또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독자에게 주는 효용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독자에게 ‘재미를 준다’, ‘정보를 준다’, ‘시각을 보여준다’ 등 다양하지만, 나는 그중에 ‘재미’를 골라 주야장천 그것만 추구했다. 내가 읽었을 때 웃기지 않으면 올리지 않았다. 온라인에 글을 쓰는 동기는 대개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 우리가 한편임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세 가지 중 하나가 충족됐을 때 만족한다. 만약 어떤 글을 읽었는데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없거나, 받은 느낌이 없거나, 동질감 같은 걸 못 느끼면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온라인 글이다.

표현의 일관성도 추구했다. 입말로 썼다. 세 줄을 넘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에서 반전을 꾀했다. 블로그는 논리가, 트위터는 촌철살인이 필요하다면 페이스북의 화룡점정은 반전이 아닐까 싶다. 메시지의 일관성도 유지했다. ‘아내에게 대들면 안 된다. 순종하자.’ 하지만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대들면 어떻게 되는지만 보여줬다. 이를 통해 내가 그려지고 체취가 느껴지게 하려고 했다. 사실 페이스북은 관심에서 시작됐다. 보고 싶어 들어와 읽고 보여주려고 들어가 글을 쓰는 게 페이스북이다. 지식이건 정보건 이야기건 느낌이건 솔직하게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이 그 본질에 부합한다. 감추거나 포장하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온라인 글쓰기는 호객행위다. SNS나 블로그 글은 음식점이 손님을 끌어들이듯 독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글의 제목은 음식점의 간판이다. 음식점의 메뉴는 글의 구성, 음식점의 전통과 현재 붐비는 정도는 필자의 명성에 해당한다.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맛과 몸에 좋은 정도다. 글 역시 재미(맛)가 있어야 읽고, 얻어 가는 것, 즉 효용(영양가)이 있어야 만족한다. 가장 먼저 나오는 밑반찬은 글의 서두와 같다. 김치가 맛있으면 메인 메뉴에 기대를 갖게 한다. 음식을 다 먹은 후 디저트가 잘 나오거나 식당 주인이 의외의 서비스를 하면 다음에 또 찾게 된다. 이것은 글의 마지막 반전이나 여운에 해당한다. 제목과 분량이 핵심이다. 제목은 끌어당겨야 하고 분량은 짧아야 한다.

페이스북에 ‘시집갑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내용은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부 강원국’이라고 쓰인 사진 한 장뿐이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좋아요’가 450개가 넘고 ‘축하합니다’, ‘행복하세요’ 등 많은 댓글이 달렸다. 독자는 즉각적으로 감응하거나 응답할 수 있는 글에 반응한다.

물론 이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읽게 만드는 글이 되기 위해선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손쉽게 반응을 일으키는 방법이 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거나, 상반되는 시각을 대비시켜 선택하게 하거나, 몇 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당신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독자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댓글을 달게 된다. 내 글을 읽고 독자들의 첫 반응이 무엇일까 생각해봐야 한다. 무반응보다는 반응이 있을수록 좋고, 나쁜 반응보다는 괜찮은 반응이 좋으며, 의례적이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반응보다는 기발한 반응을 일으키는 글, 생각할수록 새록새록 반향이 일어나는 글이 더욱 좋다. 하지만 늘 반응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도 아니다.

나도 블로그를 시작하고 한동안 공감이 빵이었다. 조회 수도 미미했다. 메아리 없는 글쓰기였다. 스스로 이렇게 무장했다. 지금은 미약하나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인간에겐 노출본능과 표현욕구. 자기만족이란 게 있다. 그걸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득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미래의 내가 독자다. 누가 읽지 않아도 축적된 자료는 내게 소중한 추억이 되고 훌륭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포털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강원국제박람회’만 뜨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동영상까지 나온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면서 만들어진 미래다. 사람에게는 니즈(Needs)와 원츠(Wants), 라이크스(Likes)가 있다. 배가 고파 먹을거리를 찾는 것은 니즈다. 원츠는 먹고 싶은 것이다. 라이크스는 좋아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니즈로 썼다면, 블로그와 페이스북은 원츠로 쓴다. 언젠가 소설을 쓰면 라이크스다. 나이 쉰 살 넘어서는 비교적 도전하며 살았다. 책 쓰기, 페이스북과 블로그, 언론 기고, 강연, 방송 출연에 도전했다. 소설이나 시 쓰기에도 도전할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을 자신을 극복한 인간으로 정의한다. 초인은 무언가를 마땅히 해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한다. 구속과 의무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의욕으로 한다. 그래서 그는 삶이 즐겁고, 인생이 행복하다. 세상이 아름답다. 포스코인도 누구나 가능하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