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경제> 기고문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관종’의 역사

‘내 글이 먹히는 구나’
교장 선생님이 우셨다. 내가 엄마에 관해 쓴 글을 전교 운동장 조회에서 읽어주다 흐느끼셨다. 그날은 나의 초등학교 3학년 어머니날이었다. 한해 전 돌아가신 엄마에 관한 글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내게 교실에 남아 있으라 했다. 내가 부끄러워할 것을 염려한 배려 아니었을까 싶다. 교실에서 교장 선생님의 마이크 소리를 들었다. 나는 우쭐했다. 글의 힘,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다. 후기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교복이 학교마다 달랐다. 여학생들의 시선을 느꼈다. 남학생을 남자로 보지 않았다. 투명인간 취급했다. 적어도 내 느낌엔 그랬다. 그땐 어렸다. 학교마다 문학의 밤 행사 같은 것을 했다. 글을 통해 여학생과 만날 수 있는 합법적(?) 기회였다. 시를 썼다. 친구들이 야간자습을 위해 저녁 먹으러 간 사이 칠판에 자작시를 썼다. 여학교나 교회 문학의 밤 행사에 가서 발표할 시였다. 나의 존재를 드러낼 거사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매일 밤 도모했던 나의 인정투쟁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술 마시던 기억 밖에 없다. 매일 같이, 그것도 새벽까지 통음했다. 술만 마시지 않았다. 토론하고 논쟁했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의 대화에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했다. 아는 게 없어서였다. 자괴감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을 향해 가던 어둑한 밤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인간이 느끼고 싶지 않은 가장 비참한 감정이었다.

“우리 부서에 지원해줘서 고마워.”
1990년 대우증권 신입사원이 됐다. 칭찬하는 상사를 만났다. 사회생활 첫 번째 행운이었다. 나는 그분께 말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했다. 그 분은 늘 경청했고, 깜짝 놀라며 칭찬해줬다. ‘너는 어디에서 그런 것을 배우느냐’며 ‘우리도 그것 한번 해보자’고 했다. 내가 쓴 글을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늘 칭찬하고 인정해줬다. 글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그분을 통해 알았다. 사람은 칭찬할수록 더 잘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문의 영광이다.”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다고 했을 때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다. 아버님은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신다. 그런 대통령의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나도 효도했다는 마음에 기뻤다. 면접을 하러 청와대에 처음 가던 날을 잊지 못한다.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에게 ‘청와대 가자’는 소리가 안 나왔다. 광화문에서 내려 걸었다. 그 후 3년 가까이 김대중 대통령의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일이다. 그분을 뵐 때마다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오는 거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분의 글을 쓰다니. 썼다기보다 배웠다. 그분이 꼼꼼히 고쳐주셨다. 최고의 첨삭지도 선생님이셨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글의 한 문장이다. 그에게 글쓰기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셨다. 가장 의미 있는 일로 생각했다. 대통령 임기 5년 하는 것보다 그 사이 보고 배우고 깨달은 것을 책으로 써서 남기는 일이 더 의미 있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내가 책을 쓴들 누가 읽어주겠는가. 책을 읽고 글을 쓰지 못한다면 남은 삶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통령이 내게 책을 쓰라고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자네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청와대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으면, 그것을 책으로 써서 공유하게. 그렇지 않으면 자네는 특권을 누린 걸세. 소수가 누리던 것을 다수가 누리면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네. 책을 쓰게.”

<대통령의 글쓰기>를 썼다. 인생이 바뀌었다. 읽기와 듣기로 살던 삶에서 말하고 쓰는 삶으로 바뀌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선생님 말씀을 듣고 교과서, 참고서를 읽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상사의 말을 듣고 의중을 읽었다. 읽고 들으면서 살았다. 말과 글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면서, 말과 글의 대상으로, 객체로 살았다. 이제는 주인으로 산다. 말과 글의 주체로 산다. 내 말을 하고 내 글을 쓴다.

시쳇말로 나는 ‘관종’이다. 관종은 관심종자의 준말이라고 한다. 관심에 목마른 사람이란 뜻이다. 나는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관심받기 위해 표현하고, 인정받고, 그것을 통해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관종, 더 관종’으로 살아갈 것이다. 끝.

2 thoughts on “<나라경제> 기고문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1. 제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생각했습니다.
    잘했다는 칭찬보다는
    그때 도대체 왜그랬지 하는 후회가 드네요.
    다시 맘을 다잡고
    긍정적인 순간을 찾아보려
    오전 내내 고민 중입니다. ㅎㅎ

  2. 관종.^^

    여기, 제 관심도 남기고 갑니다.
    블로그보다 홈피가 멋지긴 한데,
    블로그보다 잘 안들어오게 되는게 단점이네요.
    +_+

    까먹지 않고 잘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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