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매거진 “퇴고하는 법”

“고쳐라, 또 고쳐라 더 낫게 고쳐라”

글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오답은 있다. 글을 잘 쓰려면 오답을 줄여야 한다. 오답을 줄이는 과정이 퇴고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잠깐 쓰고 오래 고친다. 헤밍웨이가 그랬다. 자신의 초고는 모두 걸레라고. 그러나 수백 번 고쳤다. 누구나 초고는 쓰레기다. 글을 잘 쓴 사람은 없다. 잘 고쳐 쓴 사람만 있다. 반대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오래 쓰고 잠깐 고친다. 혹은 쓰면서 고친다. 그러면서 진이 빠진다. 고치는 것을 소홀히 한다.

쓰기는 힘들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고치기는 재밌다. 틀린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글이 개선되어 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대통령이나 회장은 고치는 사람이었다. 고치는 것을 즐겼다. 고쳐줌으로써 가르쳤다.

OMR카드 메우듯
고등학교 수학시험 시간. 1번부터 5번까지 풀지 못했다. 풀었는데 나온 답이 4지선다에 없었다. OMR카드에 마킹할 수 없었다. 멘붕 상태가 됐다. 그래서 OMR카드를 찍어서 칸을 채웠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시 문제지로 가서 풀 만한 문제를 찾았다. 답이 3번이다. OMR카드를 보니 2번에 마킹이 돼 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이대로 냈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끈 솟은 의욕으로 또 다른 문제를 하나씩 공략해나간다.

OMR카드 메우듯 일단 쓰자. 그리고 고치자. 100점 맞을 욕심으로 1번부터 풀게 되면 점수가 점점 깎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너희들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덤벼든다. 첫 문장부터 막힌다. 점점 자신감이 줄어들고 불안해진다. 빼기 글쓰기다. 그러나 일단 쓰고 하나씩 고쳐가는 것은 더하기 글쓰기다. 갈수록 의욕이 샘솟는다.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하면 쓰기를 미루지 말고, 생각나는 것을 일단 쓰자. 그것이 몇 줄 안 되더라도 ‘쓰기’는 여기는 끝낸다. 이후는 모두 ‘고치기’다. 자료를 찾아 붙일 걸 붙이고, 더 좋은 생각이 나면 고친다.

일단 무언가 써놓으면 우리 뇌는 일에 착수한다. 다른 일을 해도 뇌는 혼자 쓰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용을 던져준다. 길 가다가 생각난다. 또한, 몇 줄이라고 써놓으면 뇌가 안도한다. 불안과 초조감은 창의적 생각을 방해한다. 써놓은 몇 줄에 살을 보태면 되겠구나 하는 안도가 오히려 창의와 의욕을 북돋운다.

무엇을 고칠까
고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빠진 것이 없는지 본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 놓친 것을 채워 넣는다. 둘째, 뺄 것이 없는지 본다. 빼도 되는 것은 무조건 뺀다. 셋째, 순서를 바꿀 것은 없는지 본다. 순서만 바꿔도 설득력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을 앞에 넣을지, 뒤에 넣을지도 고민거리다. 보고 받는 사람이 잘 아는 내용일 경우에는 앞에 두는 것 맞다. ‘초두효과’를 노려야 한다. 두괄식 구성이다. 잘 모르는 내용일 때는 뒤에 넣는 미괄식 구성을 통해 ‘최근효과’를 노린다.

네 가지 오류를 잡는 것도 중요하다. 첫째, 맞춤법의 오류를 잡아낸다. 오탈자와 띄어쓰기 같은 작은 오류가 글의 신뢰를 떨어트린다. 둘째, 사실의 오류를 잡아낸다. 지명, 인명, 연도, 수치를 비롯한 팩트 체크한다. 셋째, 문장의 오류, 즉 비문을 잡아낸다. 넷째, 논리의 오류를 잡아낸다. 비약은 없는지, 개연성이 있는지 면밀히 본다.

잘 고치려면 시간 들여야
컴퓨터 모니터에서도 보고, 종이에 출력해서도 보고, 소리 내 읽어도 보고, 남에게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 처음부터도 보고 끝에서부터도 봐야 한다. 문맥 중심으로, 문단 별로 떼어서, 문장에 집중해서, 그리고 더 맞는 단어에 주안점을 두고 고쳐야 한다. 장소와 시간도 달리 해서도 봐야 한다. 사무실에서 안보이던 게 버스나 지하철, 카페, 화장실에서는 보인다. 근무시간에는 못 봤는데 잠들기 전이나 막간을 이용해 언뜻 볼 때는 잘 보인다.

들인 시간만큼 잘 써지는 게 글이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루 온종일 교정보면서 오전에는 쉼표 하나를 떼어냈고, 오후에는 그것을 다시 붙였다.” 극작가 오스카와일드 얘기다.

그러면 언제까지 고쳐야 하나. 야박한 소리지만 마감시간까지 고치는 게 정답이다. 적어도, 더 이상 고치면 나빠질 것 같을 때까지 고친다.

퇴고 체크리스트 필요
시간을 들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무엇이 틀렸는지 아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들여다봐도 무엇을 고쳐야 할지 모르면 헛일이다. 오답노트가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나를 불렀다. 자신의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줬다. 서른 두개 항목이었다. 그것을 5년간 책상에 붙여 놨다. 글을 하나 쓰면 1번부터 맞춰봤다. 그에 부합하게 썼는지.

내 글을 고치려면 자신의 체크리스트가 있어야 한다. 포털사이트에 가서 검색창에 ‘글쓰기’, ‘보고서 쓰기’, ‘기획서’ 등을 쳐보자. 글을 어떻게 써라, 어떻게는 쓰지 말라는 내용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 나도 그렇게 써야겠다는 항목, 혹은 그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내용을 추린다. 그것을 정서해서 책상에 붙여놓고 여기에 맞춰 고치면 된다.

글쓰기 실력은 체크리스트 수준
머릿속에 체크리스트가 없으면 고칠 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체크리스트에 맞춰 고치다 보면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쓴다. 그러면 더 수준 높은 것으로 체크리스트를 업그레이드한다. 예를 들어 ‘주술관계를 맞춰 쓴다.’는 수준에서 시작해 ‘군더더기 없이 쓴다.’ 또는 ‘상사가 궁금한 게 없도록 쓴다.’ 등으로 체크리스트 수준을 높여나간다. 그 수준이 내 글쓰기 수준이다.

상사야말로 이런 기준이 확고하게 정립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하 직원이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어느 때는 통과됐던 내용이 어떤 때에는 지적 대상이 되고, 같은 내용인데 김 대리가 쓰면 통과되고 이 대리가 쓰면 꾸중 듣는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다. 그러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헛갈린다.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을 낭비한다. 일관되게 고쳐주면 부하직원들도 그에 맞춰 쓴다. 부서의 문서작성 효율이 올라간다.

뭐니 뭐니 해도 회사에서 잘 쓴 보고서는 내 상사가 더 윗 상사에게 안 혼나도록 쓴 글이다. 그런 마음으로 한 번이라도 더 고친 글이다. 그래야 성취감을 느낀다. 내가 행복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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